(후타른) Maybe Green and Blue
착하고 이쁜 애들 가지고 이런 꿈을 꾼 내가 무섭다...ㅜㅜ
굳이 따지자면, 네가 처음이 아닐까?
그것은 평소처럼 묘한 집착이 섞인 관심도, 녹을 듯 부드럽고 상냥한 미소 뒤의 악의도 아니었다. 아무런 여과 없이 타인에게 그대로 내보이는 순수한 호감이 어색했다. 무엇보다 틈만 나면 그와 싸운 내가, 그 호감의 대상이란 것이. 만일 부끄러워서 잔뜩 상기된 저 얼굴만 아니었다면, 이건 정말 새롭고 참신한 종류의 도발이라 감탄했을 것이다.
어.......부담스러우면 친구부터 시작해도 좋고?
............
아냐. 생각해보니 부담스러울 건 하나도 없잖아! 그렇지?
자문자답이 쑥스러운지 그가 선이 고운 눈을 내리깔며 작게 웃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그는 고백을 받는 것은 익숙해도 누군가에게 고백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있잖아요.
.........하필이면 그 첫 고백이 나 때문에 엉망이 되어버려서 미안한 마음이 아예 없다고는 못 하지만.
더는 듣고 있기가 괴로워서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내가 전에 댁에게 한 말들. 그거, 하나도 거짓말 아니에요.
Maybe Green and Blue - 모니와 카나메 & 후타쿠치 켄지
처음은 평범한 인사말과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더 온화한 얼굴로 다가온, 별다를 것 없는 사람이었다. 첫 인상에서 무엇 하나 자신의 관심을 끌었다고 할 수도 없는 평범한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따라갔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보다 이 사람은 나의 어디에 끌렸던 걸까? 그리고 나는 그의 어디에 끌렸던 걸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 모든 것이 그의 '힘'이었다는 걸 몰랐던 당시의 나는 안개 속에 가라앉은 것처럼 뿌연 머릿속을 어떻게든 정리하려고 했다. 당연하지만 잘 될 리가 없었다.
호기심과 동시에 불안감에 입술을 잘근 깨무는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본 그가
-나 나쁜 사람 아니야.
라며 따뜻하게 웃어 보인다.
지금이었다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더 의심스럽다며 한마디 했겠지만, 당시의 나는 10살이었다.
아니, 9살이었나?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으니 정확한 나이를 알 방도가 없었다.
-왜 그러니?
일단 경계를 하며 그 자리에서 멈춰서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의 조용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마치 주문 같다. 시끄러운 잡음 속에서도 오로지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주문.
그는 잘 따라오다가 갑자기 우뚝 서버린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흠칫하며 그에게 잡히지 않은 한쪽 손의 주먹을 쥐었다. 소름이 조금 돋은 것 같았다.
그 사람의 차분하고 곧은 시선이 피부에 닿는 압박감에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시간도 늦었는데, 너무 오래 끌지 마렴.
누군가가 후타쿠치 켄지에게 ‘바깥’에서의 삶이 어땠냐고 물으면, 그는 스스럼없이 인간쓰레기들이 모인 돼지우리에서 사는 것 같았다고 대답하며 혀를 찼다. 후타쿠치가 한동안 가졌던 바깥을 향한 동경이나 그의 몇 가지 행적들을 보며 그러한 부정적인 대답에 자그마한 의구심이 가진 이들도 있었다. 다만 대부분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니와 카나메가 종종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나른한 표정으로 후타쿠치와의 첫 만남을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자그마하고 예쁘고 귀여웠는데요.”
“예쁘고 귀엽다고?”
당장 그 발언을 철회하지 않으면 손에 쥐고 있는 잡지를 던져버릴 것처럼 형형하게 빛나는 눈을 뜬 카마사키가 손가락으로 맞은편 소파에 앉아있는 후타쿠치를 가리켰다. 후타쿠치도 지지 않을 만큼 눈을 뾰쪽하게 뜨고 카마사키와 그 옆의 모니와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귀여‘웠’다고.”
“허!”
방긋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말한 모니와에 기가 막힌다는 숨을 내뱉은 후타쿠치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짙은 고동색의 새 소파에서 가죽냄새가 물씬 났다. 그럼 지금은 안 귀엽다는 소리냐고 말해봤자 카마사키와 모니와의 대답은 뻔했기에 괜히 입 아플 필요는 없었다. 대신 긴 팔을 뻗어 카마사키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스포츠잡지를 낚아채듯 빼앗았다.
“갑자기 뭐야, 이 망할 자식!”
“글쎄, 이런 거 백날 읽고 따라 해도 복근 더 안 갈라진다고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카마사키가 후타쿠치와 입씨름을 하는 와중에도, 모니와는 가벼운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이 방 안의 손님인 한 남자에게 사과했다. 키가 훤칠한 젊은 남자는 몸에 맞춘 듯 잘 어울리는 새까만 정장을 입고 후타쿠치의 옆에 앉아있었다.
남자, 마츠카와 잇세이는 어두운 조명 아래 언제나 한산하던 모니와의 사무실을 찾아온, 아주 보기 드문 외지인이었다.
“미안합니다. 저 둘은 그냥 없다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걱정 마세요. 이미 그러고 있으니까.”
낯선 외지인의 방문과 그의 주위를 맴도는 어딘가 날이 선 공기. 확실히 여느 때와 같지만은 않은 날이었다. 희미한 미소가 마츠카와의 얼굴 위로 잠시 머물다가 사라졌다.
하루 종일 피로했다. 싸우기만 하고 도통 도움이 안 되는 후타쿠치와 카마사키를 방으로 돌려보낸 다음 모니와는 뻐근한 두 눈을 감았다. 그걸로는 부족한지 긴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 눌렀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남자가 한명. 한층 조용해진 방에서 모니와 카나메는 머릿속에 잘 정리되어있는 데이터를 더듬으며, 마츠카와의 나른하게 반짝이는 시선이 닿는 것을 애써 무시했다.
.......마츠카와 잇세이. 28살로 나이는 우리 후원인과 동갑.
한때 오이카와 가문을 위해 일하던 남자. 힘의 여부는 불명.
아무리 무언가를 생각해내려고 해도 그 이상 딱히 건질 만한 것은 떠오르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제가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아. 자그마하고 예쁘고 귀여웠다고요.”
“으음..........”
“그래서 9년 전에 오이카와의 구역에서, 납치했었나요?”
돌발질문에 일순간 숨을 멈춘 모니와가 조금 굳은 얼굴로 소리 내어 웃었다. 그에게 있어 후타쿠치와의 첫 만남은, 홀로 앉아 생각하면 미소를 지을 만큼 기분 좋은 추억이었다. 제 손을 붙들고 멈춰서던 예쁘장한 소년. 결국은 저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모습에 어찌나 두근거리던지. 하지만 제 3자의 입으로 기타 의견이나 감상을 듣고 싶진 않다. 언제나 크고 선해 보이는 눈매가 가늘어진다. 모니와의 입술 새로 웃음소리뿐만 아니라 가느다란 한숨도 뒤섞여 나왔다.
“하. 하하, 그야 ‘힘’이 있는 아이가 위험한 곳에 혼자 있었으니까요.”
“...........”
“아무튼, 당신은 저 둘 중에 누가 더 적합하다고 보십니까?”
누가 더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지 묻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화제를 재빠르게 돌리는 모니와를 바라보고 한번 입술을 끌어올린 마츠카와가 간신히 들릴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답은 한참 전부터 결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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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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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도로 늘어나는 인구를 관리하기 위해, 귀족 후원인이 없는 많은 고아들은 대체로 부랑자들과 함께 옛 슬럼가에 수용되곤 했다. 오이카와 가문이 세력을 키운 이후부터 그들의 복지나 관련 정책은 조금씩 좋아졌지만, 어린 후타쿠치만 해도 각종 범죄가 들끓는 인구밀집지역에 방치되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이 사는 '도시의 바깥'은 모든 것이 아수라장이었다. 그 곳에서 어리고 힘이 없었던 후타쿠치가 별 탈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라고 카마사키가 대견하다는 얼굴로 등을 팡팡 쳤다.
사실 별 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거기서 살아남은 것은 사실이지만.
-후타쿠치는 워낙 예쁘장하니까 처음 봤을 때부터 걱정이 되었거든. 그래서 여기 데려왔고.
-크흡, 예쁘..! 누구, 저게? 게다가 '힘'을 타고난 인간이 쉽게 무슨 일을 당하겠냐고?
-그래도 그때는 아직 어렸으니까....다행이야.
언제부터인가, 종종 신기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몇 인간들의 경우 신기한 '힘'을 타고나기도 했고, 이런 경우는 빈민층이라 해도 국가에서 따로 지원해주었다.
하지만 그 힘의 여부는 출생신고와 함께 하는 검사에서 확인되는 것이라, 후타쿠치처럼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되면 지원을 받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버려진 아이들을 모아서 돌봐준 이가 모니와였다.
빈민층의 대부.
대부보다는 대모가 낫지 않냐고 말하는 어린 후타쿠치에게 그보다 4살 위인 카마사키가 건방지다며 소리를 질렀고 모니와는 부끄러운 얼굴로 웃었다.
-카마사키씨는 언제 여기 왔어요?
-4년 전.
-나보다 2년 먼저 왔네.
11살의 어린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곁에 온 2년 동안은 정말 얌전하게 지냈다. 비록 카마사키와는 하루에 한번 간격으로 싸우다가 벌을 받고, 다른 또래의 아이들에게 종종 시비를 건 것과는 별개로,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의심을 한다거나 밖으로 나가겠다고 조른 기억도 거의 없었다. 당연히 밖으로 나가고 싶어할 필요가 없었다. 모니와나 카마사키 옆에 있으면 밖에 있을 때처럼 생명의 위협이나 술 취한 사람들의 기분 나쁜 손버릇에 괴로워할 염려도 없었다.
-그게 뭐에요?
-책가방하고 교과서. 보면 모르냐?
-알 리가 있어요? 카마사키씨와 달리 난 나갈 일이 없는데?
조금씩 바깥이 그리워진 것은 늘 같이 지내던 카마사키가 고등학교라는 곳에 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딱히 같이 놀 사람이 없었던 후타쿠치가 방에서 홀로 기다리길 몇 시간. 눈치 없이 와서는 학교에서 만난 예쁜 여자 얘기나 하던 카마사키에게 못내 섭섭함을 느끼기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났다.
카마사키는 모니와의 곁에 있는 아이들 중에 유일하게 제 발로 그에게 온, 첫 만남에서 모니와의 힘에 의한 최면이나 세뇌의 과정을 거치치 않은 아이였기에 이렇게 마음대로 밖에 나갈 수 있었다. 그 말을 모니와로부터 들었을 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되어야 정상 아니냐고 생각했지만 모니와는 또 사람 좋게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최면과 세뇌를 당하지 않은 카마사키씨가 훨씬 불안정한 경우가 아닐까?
밖에 내보내도 모니와씨는 아무 걱정을 안 하는 걸까?
부러움과 질투가 뒤섞여 지저분해지는 마음이었지만, 후타쿠치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긴 했었다.
-여기는 빛이 너무 안 들어오는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어두워.
-난 좋은데? 안 덥잖아. 바깥은 지금 완전 찜통이라고.
-....정말 싫네요, 카마사키씨.
-왜?! 또 뭐!
-하던 운동이나 하세요. 아니면 좀 나가던가.
-후타쿠치 이 자식, 어린 녀석이 정말!
후타쿠치는 과장된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하고는 가지고 놀던 레고뭉치를 손바닥으로 쳐서 멀리
치워버렸다.
-모니와씨는 왜..
-넌 너무 건방..응?
그는 왜 우리같은 아이들을 이렇게 모아서 가두는 걸까?
'돌본다'에서 '가둔다'로 말이 바뀌었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지 못 한 후타쿠치는 처음으로 자신도 밖에 다시 나가보겠다고 결심했다.
괜찮을 거야. 겨우 밖에 잠시 나가는 건데.
모니와씨는 내가 뛰어다니다가 아오네를 넘어지게 했을 때도 가벼운 벌만 주고 끝났으니까. 안이한 생각이었지만 당시의 후타쿠치는 설사 걸려도 가볍게 혼나고 넘어갈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Maybe Green and Blue - 카마사키 야스시 & 후타쿠치 켄지
최근 후타쿠치와 방을 같이 쓰게 된 카마사키는 운동에 재미를 붙여 얌전히 있는 날이 좀처럼 없었다. 모니와의 명령에 가까운 제안대로 두 사람이 같이 방을 쓰게 된 것은 외로움을 보기보다 많이 타는 후타쿠치를 위한 작은 배려였다.
물론 후타쿠치는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부정했고 카마사키 역시 질색을 했지만,
실은 두 사람 다 진지하게 말하는 모니와를 당해낼 인물감은 아니었다.
-야! 넌 무슨, 아직 12살 밖에 안 된 녀석이 이렇게 잔소리가 많냐!
-카마사키씨에게만 잔소리를 하는 거에요.
-거짓말! 어제도 지나가던 놈에게-
안 그래도 눈치 없이 고등학교 미팅에서 본 데이트상대 자랑이나 하던 카마사키 때문에 조금씩 울분이 쌓여가던 참이었다.
후타쿠치는 카마사키가 열심히 소리 칠 동안 들리지 않게 작은 한숨을 쉬었다.
당장 모니와씨에게 방 바꿔달라고 해야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방을 나온 후타쿠치는 우뚝 멈춰섰다. 마침 복도에 아무도 없다. 모든 소리가 죽고 약간은 어두컴컴한 복도를 밝히는 백열등 아래에 서있자니 지독한 긴장감이 차올랐다. 카마사키와 떠들던 자신의 방과 복도는 확연히 공기가 달랐다.
모니와씨는 약 50명의 아이들을 거두었다고 들었는데, 그 많은 아이들은 다 각자 방에만 있는 걸까? 왜 이 길고 넓은 복도를 걸으면서 사람을 만난 적이 거의 없을까?
-......
아마 카마사키씨는 자존심 때문에 한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서로 티격태격하다 후타쿠치가 먼저 방 밖으로 나가는 날에는 미동도 없이 방에 콕 틀어박혀 있었다. 너 같은 놈 먼저 찾아 나서지 않겠다는, 지기 싫다는 조금 유치한 의사표현이었다.
-.....정말 아무도 없어.
눈동자를 천천히 굴려 주변을 확인한 후타쿠치는 모니와의 방이 아닌 복도의 반대편 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이. 일어나. 모니와가 너 불러."
발끝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후타쿠치의 등을 꾹꾹 누르며 카마사키는 어깨에 두른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털어냈다. 룸메이트가 아침잠이 많아서 매번 고생을 하건만, 제 알바 아니라며 카마사키는 강경한 태도로 발가락에 힘을 주었다. 후타쿠치의 연회색 체크무늬 잠옷에 주름이 잡힌다.
"5..."
"5분만- 안 통해. 10분만-도 안 통해."
자신이 하려던 말을 자르는 목소리에 후타쿠치는 속으로 이를 갈며 베개에 파묻었던 고개를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휙 돌렸다.
"아아악- 진짜!"
"뭐! 왜!"
"옷 좀 입어요! 매번 무슨 짓이야, 이게! 내 시력 좀 지켜줘요!"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남자의 속옷만 걸친 하반신에 후타쿠치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다시 베개에 푹 얼굴을 묻었다. 같은 남자끼리 뭐! 하고 소리를 지르는 카마사키에게 후타쿠치는 그저 말을 하기도 지치는지 쌔액쌔액 마른 숨을 쉬었다.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라는데, 아침에 항상 보는 저 나체는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되는 걸 어쩌라고.
저러다 나중에는 속옷도 벗고 돌아다니면.....
"모니와가 부르는데 늦을 거냐?"
"카마사키씨가 옷 입으면 눈 뜰 거라고요."
"하아, 이 귀찮은 자식."
결국은 본인이 져준다고 생각하며 바닥에 굴러다니던 아무 옷이나 줍는 카마사키의 뒷모습을 흘깃
쳐다보는 후타쿠치였다.
제대로 씻은 후에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온 후타쿠치의 뒤로 카마사키가 따라왔다. 뒤로 돌아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는 후타쿠치에게 카마사키는 '나도 모니와가 불렀어'하고 작게 말했다.
"카마사키씨도 '오이카와' 때문에 불려가는 거 아니에요?"
"야, 넌 아무 생각도 없이 그 이름 막 부르냐?"
"흥. 어차피 듣는 인간도 없는데 뭐 어때요."
그렇게 말하며 여전히 아무도 없는 긴 복도를 휙 둘러보는 후타쿠치가 크게 어깨를 으쓱-한다.
"그런데 오이카와가 뭐라고 이름을 막 부르면 안 되죠? 걔네 괴담이야 언제나 많았지만."
"....나도 몰라."
"하긴, 그렇겠죠. 그냥 모니와씨에게 가서 물어볼게요."
덤덤한 시선을 거두고 갈 길을 가는 후타쿠치의 등을 향해 카마사키는 조용히 입을 달싹였다.
평소처럼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거나 같은 레퍼토리의 말싸움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그저 건조하고 얇은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오이카와는-"
"네?"
"누구나 알고 기억하는 이름이잖아."
저 인간이 뭐라는 거야?-싶은 눈으로 카마사키를 빤히 바라보던 후타쿠치는 갑자기 튀어나온 그의
말에도 별 대꾸 없이 몸을 돌려 모니와의 사무실로 향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이었다.
미간의 주름을 더욱 접으며 카마사키는 몇 년 전, 홀로 불안에 뒤집어졌던 그 날을 기억했다.
처음으로 후타쿠치가 사라졌을 때, 저 혼자 불안할 뿐이었고 모니와는 침착하게 웃었다.
숨을 죽이는 침묵 속에서 모니와는 그렇게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당연히 가장 걱정하며 안절부절 못 해서 후타쿠치를 찾으러 나설 거라고 생각했던 그 모니와가.
-왜...넌 아무 걱정도 안-
-물론 걱정은 되지만.
모니와는 차분한 목소리로, 당혹스럽게 떨리는 눈을 한 카마사키의 물음을 잘랐다. 그는 말을 더 잇지 않고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갔다.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서있는 카마사키는 내버려두고 그는 밤이 되어서야 바깥으로 나갔다.
-후타쿠치?! 이 녀석, 이 피는 다 뭐야?
이틀인가 지나서 후타쿠치를 등에 업고 온 모니와의 어깨는 피에 젖어 있었다. 아직까지도 뜨거운 피가 스며들어 흰 셔츠가 축축했다. 모니와의 피가 아니라 쓰러져있는 어린 후타쿠치가 흘리는 피였다.
-하아...기어이 말 안 듣고 말썽을 부리네, 후타쿠치도.
모니와는 선명한 눈만 커다랗게 뜬 채로 몸이 얼어 있는 카마사키의 품에 후타쿠치를 안겨주었다.
그리고는 힘들다며 웃는 얼굴로 본인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 손바닥 위로 피가 흥건하게 묻었다.
'소생과 치유'라는 힘의 영향을 받아 후타쿠치는 대부분의 사람보다 치유력이 매우 강한 편이었다. 그렇기에 정신만 못 차릴 뿐, 이미 몸의 상처는 다 아물어서 이 대량의 피가 어디서 흘러나온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모니와의 셔츠가 피에 젖을 정도면 큰 상처임에 틀림없었다.
양 손으로 후타쿠치의 몸을 안은 채로 카마사키는 이 작은 아이의 몸을 살펴보았다. 평소보다 뜨겁다는 것 외에는 이제 별다른 상처는 없는 것 같았다.
-밖은 후타쿠치에게 위험하다고 누누이 말했는데. 불량배들도, 살인자들도, 오이카와도 있고.
....오이카와?
카마사키는 그 이름을 듣고 더 자세한 설명을 원했지만, 모니와는 후타쿠치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으며 '그 방에 좀 데려가서 눕혀줘'라고 은밀하지만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할 뿐이었다.
-모니와, 어이, 모니와!
거듭 다급히 부르는 카마사키의 목소리에 모니와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았다.
-이건 규칙이야, 카맛치. 후타쿠치는 가장 중요한 규칙을 어겼으니까 벌을 받는 거고.
-하지만 저 녀석은 겨우 방금 전에 정신을 차렸다고!
-안 하면 네가 우리 후원인에게 벌을 받아.
-그래도 후타쿠치는 완전히 도망치려던 게 아니잖아! 저런 꼬마가 겨우 바깥에 한 번 나간 정도로-
-카마사키.
복도보다 더 어둡고 좁은 공간의 공기는 다른 곳과 확연하게 달랐다.
공기가 부족하여 숨이 점점 건조하고 거칠어지는 것 같았다.
그 안에서 모니와가 부르는 자신의 이름도 어쩐지 건조해서 카마사키는 한 번 침을 삼켰다.
-너 다른 아이들에게는 이유도 묻지 않고 잘 해줬잖아. 심지어 눈도 깜박 안 하고.
-......
모니와가 하는 말은 모두, 하나같이 사실이라 반박하기가 힘들다. 벌을 주는 이유를 물은 적도 없기에 그 아이들이 고작 허락 없이 밖으로 도망쳤다는 것으로 그런 벌을 받는지도 몰랐다. 알았다면 후타쿠치를 결코 그런 식으로 보내지는-
-믿고 있으니까, 카맛치.
-......
-응? 다 끝나면 얘기해.
마주보는 모니와의 눈동자가 짙은 초록색과 푸른색이 어우러진 색으로 오묘하게 빛났다.
그는 처음으로 카마사키에게 세뇌를 건 거였다.
-난 널 믿고 있어.
모니와는 생각을 도무지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카마사키의 어깨를 톡톡 치고 나갔다.
카마사키의 힘은 모니와 같은 세뇌도, 후타쿠치 같은 회복도 아닌 매우 특이한 힘이었다.
마치 인간의 길고 검은 실루엣 형태를 한 그들을 모니와는 그림자라고 부르곤 했다.
주인인 카마사키는 듣기 싫다며 이름을 붙이지 않았지만 모니와는 스스로가 붙여준 그 이름을 꽤 좋아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림자라기엔 실체가 있어 무언가를 만질 수도 있었고,
음습하며 차가워서 닿는 것의 온기를 빼앗을 수 있었다.
..싫어.
나가버린 모니와의 앞에서는 차마 나오지 못 한 거부의 말이 심장을 아프게 쥐었다.
-아...
정신을 차린 후타쿠치는 본능적으로 모니와를 찾았다. 몸의 곳곳이 조금씩 아팠지만 움직이기 힘들
정도는 전혀 아니어서 후타쿠치는 상체를 일으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 보는 곳이다. 차가운
콘크리트로 된 벽이나 자신이 누워있던 휑한 바닥은 지금껏 느낀 적 없는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눈으로 겨우 무언가의 형체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방은 어두웠다.
나 밖으로 몰래 나간 기억은 있는데..
생각이 끝을 물고 이어지기 전에 네 개의 차가운 손가락이 등 뒤에서 나와 얼굴을 만졌다. 모니와가 여름이면 종종 줘서 오독오독 씹어 먹는 얼음처럼 차가운 그것이 문지르듯 뺨과 목을 쓸어내렸다.
-뭐야!
온 몸에 소름이 돋아 꽤나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손길을 쳐내려던 후타쿠치는 갑자기 제 뒷목을 쥐어서 바닥에 눕히는 두 손에 숨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쿵-하고 쇄골과 이마가 단단한 바닥에 부딪혔다. 이마 위가 조금 찢어졌다가 금세 아물었다.
갑작스런 손길에 당황해서 가빠졌던 숨이 잠시, 저절로 멈추는 감각이었다.
인간의 급소인 목을 잡는 악력보다는 한기에 더 놀라 후타쿠치는 몸을 크게 떨었다.
-모- 모니와씨....
온 몸을 누르며 덮어오는 한기에 체온을 모두 빼앗기는 것 같았다. 목을 쥐고 있는 손 외에 다른 손이 다가와 반바지 밑으로 드러난 다리 아래를 문지르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쿵- 머리를 기대고 있는 벽을 통해 울린 진동이 카마사키에게 전해졌다. 녀석이 모니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느껴져 잠시 울컥했다. 자신에게 힘을 써서 저런 짓을 하라고 명령한 게 누군데,
왜 저 상황에서 저 이름이 나오고, 왜 듣기 싫은데 저 작은 목소리가 갑자기 잘 들리는지.
-하아.
한숨 뒤에 작은 욕지거리가 나왔지만 씹는 듯이 뱉은 욕설도 심정을 대변해주기는 부족했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주인인 카마사키는 그림자를 부른 후에는 그들이 뭘 하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그저, 엄청 기분 나쁜 녀석들이니까 계속 닿는 것만으로도 고문이지 않을까-하는 가벼운 예측만 했었다.
-카마사키씨!..모니와씨! 카마사키씨! 내보내줘요! 여기서 내보내달라고!!
아, 아아.
제 마음 속을 지그시 억누르고 있던 카마사키가 주먹을 쥐었다.
규칙을 어긴 녀석에게만 벌을 줘야지, 모니와는 왜 나까지 고문하려는 걸까.
12살밖에 안 된 어린 녀석에게 이렇게까지.......라는 말은 속으로 하려다 때려치웠다.
그래. 어차피 자신은 지금까지 더 어린 꼬마들에게도 같은 일을 했었다.
-카마사키씨....카마사키-
-......
혼란스럽게 이어지던 침묵은 얼마 가지 않았다.
-젠장, 이제 그만 좀 불러!
쾅- 아까보다 더욱 크게 울리는 후타쿠치의 목소리가 팽팽하게 날이 선 카마사키의 이성의 끝자락을 끊은 것 같았다.
10분.
카마사키가 그림자를 부르고 가장 짧은 시간 만에 문을 연 순간이었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주인이 문을 크게 벅차며 들어서자 후타쿠치를 압박하던 검은 형체들은 서둘러
안개처럼 흩어졌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의 카마사키가 모니와에게 하던 것처럼, 주인의 말에는 잘 복종하는 존재들이었다.
-....
제 목소리를 들었을텐데도 바닥에 누워있는 후타쿠치의 모습에 카마사키는 안쓰러운 숨을 내쉬지 못 하고 삼켰다.
눈치 없고 바보라는 소리를 녀석에게서 지겨울 정도로 듣는 본인이었지만, 어느 때보다 여리게 떠는 녀석의 등에 한 가지는 확실하게 눈치 챌 수 있어서 갑자기 슬퍼졌다.
지금도 모니와의 세뇌를 풀어버리고 들어왔는데. 이제 벌은 내가 다 받게 생겼는데...
난 앞으로도 가장 힘들고 중요한 순간이 되면, 이 망할 꼬마를 위해서 인생을 말아 먹겠구나-
재수 없고 원망스러운 꼬마다, 정말로.
-야. 그만 일어나.
-.....
-나도 방에 좀 가서 쉬자. 너 때문에 며칠 동안 고생만 했는데.
위로를 할 줄 몰라 이렇게 아무 말이나 뱉어버린 자신의 입도 원망스럽기 시작했다.
그 날 이후로 후타쿠치는 밤마다 무언가를 잠결에 안는 습관이 생겼다. 카마사키는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무의식중에 온기를 잃지 않으려는 작은 발버둥이라고 생각했다. 후타쿠치에게는 그 습관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의 불안감이 이해는 갔다.
그래서 종종 안을 것을 못 찾아 카마사키에게라도 팔을 두를 때면 그저 모른 척 꾹 참고 안겨주었다. 덜 자란 사내새끼지만, 뭐.....연장자로서 자신도 그 정도 포용력은 있었다.
다만, 후타쿠치는 밖에 나가서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하나도 기억해내지 못 했다.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건만 여전히 백지 상태인 기억에 카마사키도 그 부분은 포기한지 오래였다.
큰 상처를 입었으니 일반인이라면 트라우마가 생길 법도 하다. 그래도 녀석은 이후 내가 모니와의
명령으로 벌을 줬던 것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그래서 며칠 동안은 나와 모니와에게 말도 안 걸었는데.
물론 본인도 자기가 잘못한 건 알았고 모니와가 세뇌를 아주 잘 해서 그 냉전이 오래 가지는 않았지만. 모니와는 그 날 일에 오이카와가 관련이 있다는 암시만 주고 더 자세히 얘기를 안 꺼내니 알 수도 없고.
"뭐해요, 안 갑니까?"
"......"
"저 먼저 갑니다?"
또 왜 저래?
후타쿠치는 아까부터 느릿느릿 움직이다가 기어코 멈춰서는 카마사키가 답답한지 입술을 달싹였다. 어울리지 않게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얼굴로 입을 다문 카마사키가 그대로 서있었다.
"카마사키씨-!"
여전히 별 대답이 없다.
고개를 반쯤 돌린 자세로 그를 바라보던 후타쿠치의 얼굴 위에 이윽고 미소가 화악 하고 피어났다.
평소에 카마사키에게 자주 보여주는 시원하지만 장난기 다분한 웃음이었다. 최근 들어 벌어진 여러
사건들 때문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다가도, 카마사키의 단순하고 놀려먹기 좋은 성격 앞에서는
이렇게 웃음을 편하게 지을 수 있었다.
장난을 치고, 가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전 먼저 가서 모니와씨와 놀고 있을게요! 그리고 카마사키씨는 아침운동 하다가 뻗은 걸로 전하겠습니다-"
"...뭐, 뭐야, 임마?!"
"요즘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요, 카마사키씨? 벌써부터 나이의 영향을 많이 받는 거 아닙니까?"
그제야 씩씩거리며 쫓아오는 카마사키를 피해 달아나며 후타쿠치는 역시 카마사키씨는 단순해요,
나중에 사기라도 당하면 어쩌려나 몰라-하고 웃었다. 복도에 가득 찼던 묵직한 공기를 깨버린 커다란 웃음소리였다.
얄밉게 구는 입과는 달리 속으로는 요 며칠간 계속 중얼거렸던 말을 다시 읊조렸다.
'아, 다행이다.'
지금, 저 사람이라도 여기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입술 끝만으로 웃은 후타쿠치가 모니와의 방문 앞에 서서 카마사키가 제 옆까지 걸어오기를 기다렸다.
.
.
.
사실 모니와씨의 힘은 두 가지가 아닐까요- 라고 카마사키씨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모니와씨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세뇌를 많이 당했음에도 여전히 궁금했다.
고개를 갸웃- 돌리기만 하는 카마사키씨에게서 좋은 대답을 기대할 수는 없었지만, 방에 들어서자
보이는 동그란 인상의 얼굴에 이번에는 본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힘보다는, 대체 당신의 나이가 몇이냐고.
모니와씨는 노화를 멈추는 힘 같은 걸 따로 숨기고 있지 않을까.
적어도 처음 거둔 아이라는 카마사키씨보다는 많은 게 확실한데, 아무리 봐도 카마사키씨가 더 나이가 많은 것 같다.
하는 말이나 행동 말고 생긴 것만 보면.
"후타쿠치, 좀 도와줘. 아오네가 또 일 쳤어."
"아오네도 이제 저처럼 다 컸잖아요. 옛날과 달리 스스로 해결할 거라고요."
"그 말을 하는 다 큰 너는 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고 보냐?"
울먹이는 모니와를 위로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카마사키씨가 시비를 걸었다.
옆에 있는 그를 휙 쳐다보자 열 받게도 싱긋 웃는 얼굴이다.
"모니와씨. 또 무슨 바람이 불어서 아오네 사고를 저에게 떠넘기려 하십니까? 오이카와 일 때문에 부른 것 아니었나요?"
도움 안 되는 카마사키씨 때문에 위로는 접고 직설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뱉자 모니와씨가 어버버 거린다. 키도 작고 착한 인상이라 저럴 때는 또 완전히 순수한 아이같단 말이야. 언젠가 또 돌변할 거면서, 그러다가 또 곤란해지면 세뇌시킨 다음에 화해하고. 세뇌는 제대로 먹히고 있지만 너무 많이 당해서 그의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10년이 되어가도 감이 안 온다.
"후...후타쿠치, 어디서 그 이름이 나오니?"
"네? 아닙니까? 요즘 난리잖아요, 그 집안. 신문에서, 잡지에서, 계속 떠들고."
오이카와....라는 네 글자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 내가 태어난 해부터일 것이다.
후원하고 있는 아이만 약 200명이 넘는다는 기록부터, 그 가운데 절반은 힘이 있는 아이들이라는.
그 전까지는 별로 알려진 가문이 아니었지만 갑자기 유명세를 타면서, 실제로는 그 가문이 힘이 있는 아이들을 납치해서 모아놓고 인체실험을 하고 있다는 여러 괴담까지 돌았다.
사실 인체실험 부분만 빼면......그거 모니와씨가 하고 있는 일인데.
"....후타쿠치."
"네? 왜요?"
"오이카와 관련된 거 맞아. 그럼 이제부터 네가 할 일을 알려줄게."
"으, 예?"
잠시 다른 생각에 빠지려는 찰나, 모니와씨가 뜬금없이 화악 맑은 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잡았다.
"뭐야. 카마사키씨는 그 계획이 통할 거라고 생각해요?"
"너라면 승산은 있다고 보는데."
"난 싫어. 전에 잡지와 뉴스에서 인터뷰도 봤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들어. 경박해서는."
"임마! 너 왜 은근슬쩍 반말이야!"
"혼잣말이에요!"
모니와의 방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다시 언쟁 아닌 언쟁을 하던 두 사람은 방에 들어와서야 입을 꾹 닫았다.
"나 사실...건방지고 재수 없는 그 가문 녀석들....불리한 증거도 잡았겠다, 싸우자!"
"네?"
"...인 줄 알았어."
"아...뭐, 그건 말도 안 되지만. 모니와씨가 오이카와 쪽을 유독 신경 쓰긴 하죠."
"흐음."
"그런데 저 증거들은 어찌 얻은 건지."
정부에서조차 찾아낼 수 없었던, 오이카와 가문에서 여러 겹으로 꽁꽁 감췄던 기밀들이 모니와의 손에 들어왔다. 그리고 모니와는 아주 담담하게 그 자료들을 후타쿠치와 카마사키에게도 내밀며 보라고 했다.
그런 기밀을 쉽게 보여주다니, 배신이라도 하는 날에는 나 어느 한 쪽에게 정말 죽을 지도.
"카마사키씨는 제가 그렇게 가는 것 찬성입니까?"
문 앞에 서있는 남자로부터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후타쿠치는 그의 대답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않고 또박또박 다시 물었다.
"절 그런 곳에 보내는....모니와씨 결정에 찬성이냐고요?"
".....아까도 말했지만. 너라면 일을 잘 해결할 거라고 생각해. 모니와도 그걸 알고 널 고른 거고."
그러시겠지.
심드렁하게 숨을 내쉬는 후타쿠치의 눈에 카마사키의 다소 지치고 복잡한 표정이 선명하게 담겼다.
사지로 향할 내 모습을 걱정이라도 해주는 걸까? 아, 만일 그런 거라면 조금 기쁘지만.
"그런 심각한 표정 짓지 마요. 안 어울리고 못생겼어."
"뭐...?"
"그럼 만나러 갈게요. 오이카와의 막내 도련님. 무사하길 기도나 해주세요-"
마치 천연덕스러운 어린 소년처럼, 한 발자국 다가와서 카마사키의 앞에 선 그가 홀로 웃었다.
"오이카와 나이스 서브!"
"오이카와!"
밖으로 나왔음에도 후타쿠치의 가슴은 무언가 꽉 누르는 것 마냥 여전히 답답했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호기심도, 바깥세상을 향한 그리움도 아니었다. '오이카와'라는 이름을 향한 본능적인 거부감이라는 것이 오히려 설득력 있었다.
"........타깃이 이 학교 배구선수라는 건 알지?"
"뭐, 잡지에서 읽은 것 같기도 하고."
아마도 체육관처럼 보이는 곳 안에서 경쾌하게 튀는 공 소리가 들렸다. 후타쿠치는 눈을 힐긋 움직여 뒤에 서있는 남자의 눈웃음을 응시했다. 눈에 확 드러나진 않지만, 어쨌든 그는 지금 웃고 있었다.
마츠카와 잇세이.....그는 처음 만난 날부터 묘하게 어둡고 불편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다가왔다. 타깃도 마음에 안 드는 마당에 조언자라고 따라온 남자까지 이 모양이라니. 어쩐지 질색인 기분에 짜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하얀 얼굴을 그에게 돌리며 물었다.
"뭐가....아까부터 왜 웃어요? 재밌어요?"
"학교를 한 번도 다녀보지 못 했다고 들어서, 좀 들뜬 반응일 줄 알았는데."
"남자만 득실거리는 학교 따위. 걱정 마시죠? 시비 거는 놈들 있으면 다 때려눕힐게요."
"그게 걱정인데, 그냥 최대한 눈에 안 띄게-"
한 걸음 불쑥 다가가자 아까보다 더욱 날카롭게 날을 세우는 눈빛이 우스운 것 마냥, 마츠카와는 입 꼬리를 위로 끌어당겼다.
"그 남자와 친해져 보라고."
"지랄....아, 죄송. 저도 모르게 속마음이 나왔네요."
....차라리 최대한 눈에 안 띄게 죽이라는 명령이 훨씬 수월할 텐데.
후타쿠치는 마츠카와에게 감흥 없는 사과를 하면서도 흥, 코웃음을 치며 어색하게 몸에 붙는 새하얀 교복 마이를 내려다보았다.
-
...오이카와가 제일 메인인데 오이카와가 아직까지 썰에만 등장하는 포스팅
기본 설정은 옛날에 꿈으로 꾼 걸 옮겨쓴건데 왜 이렇지....모니와 내가 미안해ㅜㅜ
프로젝트 끝나면 글로 옮겨쓸거임0ㅅ0
오이카와 가문은 자기만의 독자적인 구역도 갖고있는 최상류층 귀족임. 대선활동도 하고 인재육성이랍시고 후원도 많이하는 가문. 그런데 실제로는 힘이 있는 애들 이용해서 뒤에서 약도 팔고 여기저기 불법으로 손대는 게 많으면 좋다. 그런데 워낙 막강한 가문인데다 딱히 증거가 없어서 소문만 무성하게 나있음.
오이카와 토오루는 가문의 막내아들인데 말도 잘하고 얼굴도 미남이고 중학교때부터 스타 배구선수라서 인기가 많음. 고등학생인데 지금은 배구부 주장임. 게다가 가지고 있는 힘도 페로몬 종류라서 가문이 대중들에게 자기들 좋은 이미지 유지하는데 이용했으면. 그런데 어릴 적의 경험 때문에 트라우마가 남아서 피 같은 거 보면 패닉 상태 오면 좋겠다.
오이카와 토오루의 힘은 페로몬. 성적인 페로몬이긴 하지만 평소에는 조절 잘 해서 은은하게 풍김. 그래서 다들 보면 아무 이유도 없이 호감을 품는 정도? 그런데 니로는 오이카와 만나기 전부터 이유없이 싫어함. 남자 잡아먹을 것 같다고 하고, 잡지인터뷰 보면서도 경박하다구 함. 오이카와의 능력이 약물이나 독성에 면역 있는 후타쿠치에겐 잘 안 먹혀서 그럼. 게다가 평소에는 힘을 숨기고 있으니까 니로 입장에서는 그냥 뺀질거리는 일반인 수준..오이카와가 어느 정도 작정하고 내보내지않는 이상 효과 없을 듯.
모니와는 예전에 오이카와 가문에서 연구하던 인체실험에 실험체로 참가한 적 있음. 그때 부작용으로 노화, 성장이 멈췄고 늘 20대 초반의 모습임. 그것 때문에 후타쿠치가 모니와 힘의 종류는 대체 몇 개일까 고민했으면. 아무튼 실험소에서 도망친 모니와가 남자 X에게 후원받아서 고아원을 만들었음. 말로는 하지 않지만 오이카와 가문에 악감정이 많음.
그런데 오이카와 가문이 예전부터 고아인 힘이 있는 애들 몇 명을 이용해서 어떤 나쁜 짓들을 했는지 그 극비문서가 모니와에게 들어옴. 그건 예전에 가출한 후타쿠치 구하러(?) 갔을때 모니와가 관리자 방에서 훔쳐온 거임. 그 문서를 이용해서(+ 약간의 협박을 해서) 오이카와 가문과 표면적인 협력관계가 되기위해 모니와 측에서 후타쿠치를 보냄. 처음에는 너만 할 수 있다고, 우선 오이카와 토오루의 눈에 띄는 것부터 하라고 해서 평범한 남고생처럼 하고 접근했으면. 왜 하필 토오루냐하면 나머지 가문의 사람들은 다 히키코모리처럼 어디 틀어박혀서 있는데 토오루는 하도 밖에 싸돌아다녀서 접근이 제일 쉽다고 생각함.
협력관계가 되려는 비슷한 뒷세력들이 많은데 서로 견제가 심해서 오이카와쪽과 접촉하려는 상대의 암살도 빈번함. 후타쿠치는 처음에는 왜 꼭 자기가 가야하는지 몰랐다가 몇 번 암살시도 받고 다쳐서 죽다 살아난 뒤로 왜 모니와가 자기 골랐는지 알 것 같다. 힘이 소생이라 어지간하면 죽지 않음.
카맛치가 감시랍시고(실은 그냥 걱정되는 거지만) 멀찍이서 미행하고..카맛치 외에도 후원인 X가 보낸 마츠카와가 진짜 감시 차원에서 같이 다님. 맛층 오이카와 가문에서 일하다가 X에게 돈 받고 영입된 엘리트. 근데 양복 입고 선글라스 써서 더 눈에 띈다고 후타쿠치가 엄청 싫어함.
2학년 전학생이 배구부 입부했다는 걸 듣고 오이카와는 교실에서 갸우뚱 하겠지. 일단 명문고인데다 성적이 엄청 좋지 않으면 전학생 잘 안 받기로 유명한데...전학생이 왔다는 것부터가 신기함. 그래서 부활동 전에 2학년 교실에 니로 얼굴 보러 갔으면. 오이카와 선배가 페로몬 은은하게 풍기면서 2학년 교실 안으로 들어오면 남학생 여학생 다 반짝반짝 거리는 눈으로 지켜보고 난리날듯. 오이카와는 '안녕~ 전학생짱 이름이 뭐야~' 평소처럼 가볍게 물으려고 했는데 책상에 앉아있다가 고개 힐긋 들어서 오이카와 바라보는 니로 얼굴 보고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물음.
내가 널 어디서 봤던가...?
평소 자기답지 않게 무표정에 낮은 목소리겠지. 다짜고짜 와서 말 거는 남자 보고 니로는 첨엔 뭐야 이 병신- 이러다가 바로 상대가 오이카와 토오루인걸 알아차림. 갑자기 속이 거북해지는 걸 꾹 참고 니로가 웃으면서 저는 선배 얼굴을 본 적이 없는데 선배는 절 봤을 수도 있죠-라고 대답함.
암튼 오이후타 첫만남 이후로는 최악이었음. 나름 친해지려고 속으로 토하면서도 얌전한 척 내숭도 부리고 난생 처음보는 스포츠인 배구로 부활동도 신청했는데 오이카와가 미묘하게 괴롭히는 거임. 전학생 텃새는 아닌 것 같고 그냥 첫만남부터 서로가 맘에 안 드는 거였으면. 맛층은 학생은 아니고 그 학교의 보건선생으로 와서 감시하는데 하루는 오이카와 어그로에 빡친 니로가 얼굴로 공 날려서 코피 나는거 보고싶다..그리고 교실에서 내가 무슨 영광을 본다고 이러나 현타 온 니로랑 오이카와 코피 흘리면서 보건실 찾아온 거 보고 맛층 한숨 쉬는거.
둘의 학교생활 자체는 아주 포카포카(?)한데 밤 되면 니로 많이 다칠 것같음..정말 한번은 오이카와가 부활동 끝나고 집에 들어가는데 멀리서 니로 뒷모습이 보임. 룰루~하면서 어떻게 엿 먹일까 고민하면서 뒤따라가는데 바로 앞에서 니로가 총맞는거 목격했음 좋겠다. 그거 보고 깜짝 놀라서 병원에 데려가려다가 자기 가문에서 후원하는 애 중에 뛰어난 힐러가 있는 거 떠올리겠지. 평소엔 늘 무시하는 자기 기사랑 자가용 전화해서 부르면 되는데 애가 너무 패닉이라 아무 생각이 없음. 무작정 업고 뛰었으면...근데 업고 가는 길에 다 나아서 니로가 힘이 있는 인간이라는걸 알아차릴 것 같음. 그러다 문득 생각하겠지.
이런 상황이 분명 예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참고로 오이카와는 가문의 일 때문에 여러 꼴을 보면서 큰 도련님이지만 이런 상황이 처음이겠지. 본가에서 가출한 이후로는 지난 5년 동안 피구경을 한 적도 없었고. 치안이 좋은 동네인데 갑자기 제 앞에 지나가던 후배가 총에 맞다니. 그래서 자기 자취하는 오피스텔 들어와서 침대에 일단 니로 눕혀놓고 멍하니 있다가 이게 뭔가 싶어서 훌쩍거릴 것 같다. 그때 니로가 눈 천천히 뜸. 총에 맞은 곳이 이상하게 치명적인 급소가 아니라서 평소보다 빨리 나았으면. 그리고 눈 뜨자마자 보인게 울먹이는 오이카와의 얼굴이었음.
사실 니로 입장에선 당황스러운데 자기 자신도 반쯤 함부로 하는 자기 목숨 때문에 생판 남에 가까운 누군가 울어주는 것이 약간 울컥하겠지. 물론 오이카와는 니로가 죽을까봐 슬프거나 걱정되서 운게 아니라 당황스러움+쇼크 상태에서 울음 터진 거지만 지켜보는 니로는 그런 심정을 추측할 힘도 없음. 그냥 문득, 본인도 미친 소리라는거 알지만 늘 뺀질거려서 얄밉기만 하던 오이카와가 조금 달라보인다고 생각했으면.
한참 시간이 지나서 상황파악 끝내고 냉정을 찾은 니로가 변명할 말을 생각하다가 어차피 자기 총 맞는거 눈앞에서 봤을텐데 어떤 변명도 안 먹히겠단 생각으로 이봐요-하고 부름. 오이카와는 아까부터 울음은 그쳤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개 푹 숙이고 있었음. 상태가 안 좋아보여서 니로가 조금 걱정되었지만 부탁인데 오늘 본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얘기하려는데 울음기 완전히 사라진 목소리로 오이카와가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을 꺼내겠지.
우리 만난 적 있는지 물었었지? 기억 나?예에, 처음에 뜬금없이 그렇게 묻긴 했죠......예전에, 큰 형이 탐내던 힘을 가진 꼬마가 있었대. 무서워서 아무도 뭐라고 말은 못 했는데.....무슨 상처를 입어도 금방 나아서 형이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지.......네?거의 소문처럼 퍼진 말이지만....그러다 질린 우리 형이 결국 죽였다는데. .........네 목숨 참 질기다. 그렇지?
고개 든 오이카와가 저 마지막 말은 니로 눈 똑바로 바라보면서 씁쓸한 얼굴로 했으면 좋겠다.
(이어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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